언약은 지혜와 권능의 하나님께서 인간을 대하실 때 사용하시는 관계의 틀이다.
그러므로 언약을 알아야 하나님을 제대로 알 수 있다.
성경읽기
(창세기 6:1 – 9:18)
노아 언약의 배경
인간의 타락과 악행이 점점 더 커짐에 따른 공의의 하나님의 선택(창 6:5, 11절) : 홍수를 통한 선택 받지 않은 모든 피조물들의 멸망
- 노아와 그의 가족들 그리고 선택 받은 동물들은 목숨을 건지고 홍수 이후의 생육과 번식의 토대가 됨.
- 노아의 홍수의 심판은 최후의 심판은 아니지만 온 지구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 11절의 “땅에 포악함이 가득한지라(The earth was filled with violence)”에서 포악함(violence)이란 반사회적, 반인륜적 행동, 짐승과 같이 힘이나 권력으로 자기 욕심을 채우려는 인간의 악함을 의미함. 즉 약자를 억압해서 자기 욕심을 채우려는 인간의 악한 모습. 인간의 악한 모습은 하나님의 마음에도 영향을 미칠 정도임(6:6)
- 하나님은 감정이 없으신 분이 아니라는 사실. 사실 인간이 감정을 가진 이유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 하나님은 질투의 하나님이시다. 질투는 사랑의 이면의 감정. 하나님은 세상을 지으시고 몹시 기뻐하셨다. 또 하나님은 죄를 향하여 분노하신다 등등.
그 심판 이후에 하나님은 노아와 그의 가족들, 짐승들을 비롯한 모든 피조물들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심. 하나님은 죄로 물든 세상에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심(창 9:15)
노아의 언약
- 언약 당사자: 하나님과 인간을 비롯한 모든 피조물. 하나님께서 선도적으로 직접 언약을 세우심(창 9:9)
- 언약의 내용: 하나님께서 피조물들을 보존하시고 보살피실 것임. 하나님께서 인간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피조물들을 보존하시고 보살피시겠다는 약속이 노아의 언약의 핵심 내용이다.
- 인간에게 주어진 의무
- 피를 먹지 말라(창 9:3-4). 이 때부터 인간이 육식을 했다고 추정됨.
- 살인하지 말라(창 9:6). 짐승은 죽여도 되지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든 사람은 죽여서는 절대로 안된다. 그렇다면 전쟁이나 정당방위의 경우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사형은 성경적인가? 낙태는? 안락사는?
- 살인자는 반드시 처벌하라(창 9:6). 실수에 인한 살인의 경우는 예외(신 19:4-5)
- 언약의 징표: 무지개(창 9:12-13). 무지개를 통해서 하나님은 생명 보존의 약속을 시각적으로 상기시켜 주신다. 무지개는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과 창조의 다양성을 상징한다. 이와 같이 언약에는 언약의 징표가 있을 때가 있다. 예를 들자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의 최후의 만찬에서 포도주를 들고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세 언약”이라고 말씀하셨다.
노아의 언약이 보증하는 것
노아의 홍수 이후로 세상 마지막이 되기 전까지는 전 지구적, 우주적 대재앙은 없을 것이다(창 8:22). 즉 인간에 의한 인류 멸망의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ex: 핵전쟁 등).
세상 마지막 심판은 물이 아니라 불에 의한 심판이 될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그 때에 세상은 물이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벧후 3:6-7)
노아의 언약이 은혜의 언약인 이유
- 하나님은 인류의 악행이 점점 더 심해짐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시고 인간과 동식물을 보호하시고 보살피실 것을 약속하심.
- 인간의 죄와 악행에 따르자면 하나님께서는 또 다시 세상을 심판하시고 멸하셔도 되지만 그렇게 하시지 않으시겠다는 은혜의 약속이 노아의 언약의 핵심이다.
- 이 노아의 언약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언약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상응하는 어떤 행위나 의무나 선행에 관계없이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류를 보존하시겠다는 일방적인 약속을 하신 것이다.
노아의 언약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생명을 소중히 여기시는지를 배울 수 있다.
노아의 언약에 나타난 그리스도
- 노아는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노아가 만든 방주 안에 들어간 모든 생명체는 살아 남았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다 살아남는다. 물이 세상의 죄와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한다면 방주는 구원을 상징한다. 이 방주에는 물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역청(pitch)이 발라져 있었다.(창 6:14) 역청은 방주 안으로 죽음의 물이 들어오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서 역청이 없으면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 역청이라는 히브리어 단어와 대속(atonement)이라는 단어는 어원이 같다. 즉 방주 안으로 하나님의 심판과 죽음의 물이 들어올 수 없었던 이유가 바로 역청 때문이듯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에게 죄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가 미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 때문이다.
- “노아” 라는 이름의 의미는 “안식(rest)” 이다. 노아는 하나님께 버림 받고 저주 받은 세상으로부터 방주에 올라탄 사람들과 짐승들이 재앙을 피하고 안식을 얻도록 하는데 쓰임을 받았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는 이 세상의 죄와 유혹과 핍박 가운데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안식을 주신다.(마 11:28)
- 홍수의 심판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혈통을 남겨두셨다. 노아에게는 셈과 함과 야벳 이라는 세 아들이 있었는데 그리스도는 셈의 혈통에서 나오신다. 또한 홍수의 재앙과 심판을 겪고 살아남은 자들 중에서 하나님의 구속의 백성들이 생겨났다
노아의 언약은 구속의 언약에 부합하는 언약이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을 구원하시려면 세상이 유지되고 또 택함 받은 백성들이 태어나고 살아가야 한다. 구속의 언약을 통한 구원의 계획이 있으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모든 인류를 멸망시키지 않으셨고 또 그들을 보호하시고 유지하실 것을 노아의 언약을 통해서 약속하신 것이다.